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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필락시스(anaphylaxis)

category 한국 2017. 3. 25. 04:24

구급차를 타고 간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 사건.


금요일

일찍 퇴근한 김에 마트에 가니, 시식코너에서 처음 보는 ㅅㄱ버섯이라는걸 팔고 있었다. 

어떤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송이버섯 + 표고버섯 이라고 했다.

시식을 했는데 너무나도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10개 정도는 주워 먹고는, 한 봉다리 사들고 집에 왔다.

남편이랑 같이 구워 먹으려고 했는데 그날은 남편이 늦게 퇴근해서 같이 못먹었다.



토요일

집에 워낙 안먹고 그냥 내비 두었다가 버리는 음식들이 많았기에, 이번에는 꼭 이 버섯을 오늘 먹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아침은 원래 안먹으니 패스. 

점심에는 된장찌개(두부+달래)

저녁에는 불고기

후식으로는 천혜향 그리고 맥주를 마시면서 버섯을 구워먹었다.


이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1시경부터 이상하게 몸이 많이 가려웠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콜린성 알러지 + 극건성 피부 로 가려운 일이 많았기에

적당히 긁으면서 잘려고 했는데, 아무리 견디고 견디고 견뎌도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밤마다 배가 아팠지만, 어떻게든 잘려고 노력해서 2주간을 버티다가 위계양이던가 천공이던가로 쓰러진 적이 있다. 덕분에 6년 개근상을 놓쳤다.) 


그래서 일어나서 항히스타민제 하나를 먹은 다음, 욕조에 적당히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몸을 담궜다.

물 속에서도 가려워서 계속 벅벅 긁어서 온몸에 피가 나기 시작했지만

뭐 좀 있으면 가라앉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시간여가량을 욕조에 있다가 나왔는데,

점점 더 가려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걸로 사람을 깨워도 되나... 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살포시 흔들었다.

"오빠, 나 몸이 좀 많이 가려운 것 같아"

남편은 불을 키고 나를 보자마자 "응급실에 가야겠다" 라고 말을 했다.


구급차를 불러야겠다는 생각 조차 못 했었기에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가는 내내 택시 안에서 미친듯이 몸을 긁은 기억이 난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고 남편은 접수를 하고는 돌아왔다.

"조금 기다리면 의사 선생님이 부를꺼래" 라고 말하길래

기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매우 어지러우면서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의사 선생님을 불러줘"

"지금?"

"응"

"조금만 기다리면 곧 진료 본다는데?"

"아냐 지금 불러줘"

남편이 일어남과 동시에 나는 바닥으로 쓰러졌고,

저 멀리서 내쪽으로 뛰어오는 사람들이 6~8명 정도가 흐릿하게 보였다.


이미 시야는 컴컴한 상태 였지만 느낌은 대충 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나를 들어서 응급실 시트에 눕게 하고

그 사이에 누군가는 커텐을 쳤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내 바지를 벗겼고

그리고 허벅지에 주사를 놓는 느낌이 났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는 정신을 아예 놨다.


이후에 정신이 들고 나니, 두드러기는 거의 다 가라앉았고 가렵지도 않았고 그냥 좀 졸리기만 했다.

이게 아침 6시~7시 사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도 있고, 정말 다 죽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멀뚱멀뚱 나일론 환자처럼 있다 보니 정말로 집에 가고 싶었지만

아낙필락시스라서 또 기절할 수도 있으니 경과를 좀 지켜봐야 하는데다가, 지금 당장은 피부과 관련 선생님이 없으니까 내일 진료도 봐야 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ㅋ원ㅋ을 했다.


뭐 선생님 만나서 들은 얘기로는,

그 날 특별히 처음 먹은 음식이 없으니 ㅅㄱ버섯이 의심되긴 한다고

알러지 관련된 검사 한적 있냐고 묻길래 이미 이것저것 해봤는데(콜린성 알러지 때문에) 반응 나온게 없다고 얘기해주었다.

선생님이, 다음에 또 이런 증상 오면 식도가 막혀서 위험할 수 있다고 허벅지에 맞는 주사를 살래? 라고 물어보았는데

허벅지에 주사 놓을 자신도 없고 해서,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빨리 병원에 오겠다고 하고 걍 집에 왔다.



그 뒤로는 다행히 저런 일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때 얻은 교훈


1. 처음 보는 식자재/향신료/음식 등을 쉽게 먹지말자. 알러지가 발생할 수 있다.

2. 2인실을 쓰면 실비 보험으로 다 커버 되지 않는다. 6인실을 써야함. 

    근데 병원에서는 늘 자리가 없다고 말함. 진짜인지는 모르겠음.

3. 실비 보험 처리를 받으려면 때야 하는 서류가 생각보다 많은데, 꼭 퇴원할 때 다 받아가도록 하자. 

    근데 일요일에 퇴원하면 서류를 다 받아갈 수가 없어서(원무과가 놀기 때문) 결국 한번 더 가야함. 아프더라도 평일에 아프자.

4. 응급실 침대는 매우 불편하다.

5. 응급실에 있으면 환자보다는 보호자가 훨씬 불편하다.

6. 생각보다 아주 이른 시간에 의사 선생님이 보러 옴. 자다가 깨서 비몽사몽간에 얘기해야 할 지도 모르니,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생각해 놓자

7. 응급실에 가면 그 다음 진료를 바로 예약할 수 있으므로, 1차 2차 진료기관을 뛰어넘어 대학병원을 바로 예약할 수 있음.

8. 근데 응급실은 정말 왠만하면 안가는게 좋음.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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