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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2010년도에 있었던 일. 그 뒤로는 발생하지 않았음.



1번째

이건 내가 첫번째 직장에서 첫번째 구한 집에서 자취를 할 시기에 발생했다.


우선, 나는 초/중/고 시절에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들으면서도 단 한번도 쓰러진 적이 없다.

장거리 달리기를 많이 못하긴 했지만(남들보다 한바퀴 덜 뛰고도 꼴지한 적이 꽤 있다)

콜린성 두드러기가 생기기 전 까지는 나름 잘 움직였고, 단증도 있는걸로 봐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에 비해서 절.대.로. 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나는 키도 크고 몸집도 커서 (....) 힐을 신고가면 자이언트 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내가 아침 출근 버스에서 쓰러졌다.


겨울이였고,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나지만, 6시 40~50분 사이쯤이였던 것 같다.

출/퇴근 버스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고, 버스 복도에도 사람이 잔득 타고 있었다.

난방을 틀어놔서 꽤나 답답했고, 

우리 집에서 3정거장만 가면 회사 였기 때문에(거의 마지막 정류장) 나는 버스 앞쪽 복도에 서 있었다.


이때의 나는 꽤나 패션에 주관이 뚜렸했기 때문에, 겨울에도 무조껀 코트에 워커를 신었었고,

안에도 얇은 티에 가디건 정도만 입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답답하고,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에다가, 무엇보다도 토할것 같아서

코트의 단추를 모두 풀었고, 더 이상 안되겠으니 내려야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집에서 한 정거장도 가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바닥으로 쓰러짐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누가 RESET 버튼을 누른 것 처럼 답답함이 사라 졌고 두통도 없어졌는데, 

문제는 온몸에 힘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 너무 깜짝 놀랐고, 주변의 사람들도 매우 놀란게 느껴졌다.


빠르게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주었고, 누군가는 자리를 비켜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주었는데

너무나도 쪽팔렸다. 쪽팔리고 쪽팔리고 또 쪽팔렸다. 다시 생각해도 쪽팔린다.


회사에서 쓰러지는 사람을 종종 보면서 엄청 가쉽거리로 삼곤 했었는데, 그게 나라니!!!!

부끄럽고 창피하고 쪽팔리고 기운은 없고, 여튼 여러모로 복잡 미묘한 심정에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도망가려고 하는데, 걱정 됐는지 사람들이 계속 안부를 물어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우신 분 들인데, 

25살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 이여서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는 뛰어서 도망가버렸다.


그리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2번째

1번째의 상황과 비슷했다. 비슷한 시간의 출근 버스에서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쓰러졌다.

차이점은.. 1번째는 겨울이였고, 이때는 여름이였단 거다.

쓰러지면서도 "이렇게 넘어지면 티셔츠가 올라가서 배가 보일텐데..... " 하면서 쓰러진 기억이 난다


이때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우선 아주 어지러웠고

시야 바깥쪽부터 안쪽 방향으로 화면이 검게 페이드 아웃 되는게 느껴졌고

그 뒤에 쿵! 쓰러졌다.

 

쓰러진 이후의 상황도 1번과 같았다. 착한 ㅅㅅ전자 사람들 같으니..

사내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때도 역시 부끄러워서 괜찮다고 외치고는 도망갔다.


이때 곰곰히 생각해본 공통점은 두가지 였다.

1. 일찍 일어났다 (평소에는 8~9시 사이에 일어나는데 이때는 5~6시 사이에 일어났다)

2.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회사 출근 버스를 탔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지 않았고

그 뒤로는 출근 버스 뿐만 아니라 시내 버스도 타지 않았다. ONLY 택시인생!


사내 병원

첫번째는 "그럴 수도 있지" 였었는데, 같은 일을 두번 겪고 나니까 너무 무서웠다.

게다가 "자취 + 남친 없음 + 이 지역에 친구 없음" 트리플 상황이라, 무슨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감이 커져갔다.

그래서 빠르게 사내 병원을 찾아갔다.


이것저것 얘기한 다음 심전도를 측정 했는데, 부정맥이 의심된다고 하셨다. 

부정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소견서(진단서 인가?)를 받은 다음 대학병원을 예약했다.




대학 병원 1

예약하고 한달여간을 기다려서 대학병원에 입성했다!

이것저것 얘기하고 나서는, 

심장 초음파를 찍어 보자고 하시길래 그날 바로 하는 건줄 알았는데, 2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속으로 "이게 중대한 병이면 어쩌려고 이렇게 뒤로 미루는 거지?!" 싶었지만 

내가 그런 항의의 표정을 지을 여유를 주지도 않고, 선생님은 가버렸다.

이렇게 짧게 환자를 보는데도, 한달씩 기다려야 할 정도면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는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월차 쓰고 온게 너무 아깝고 이 상황이 화도 나서, 아주 유명한 마카롱 가게에 가서 마카롱을 30개 사서 그날 다 먹어버렸다.

이런 상황을 만든, 비루한 몸뚱아리에게 너무 화가 났다. 


대학 병원 2

두근두근 심장 초음파의 날이 왔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초음파 용 젤을 좀 따뜻하게 해서 발라주면 안되는걸까 왜 차가운걸 쓰는거지?

차가워서 움추린체 초음파를 받고 나니, 선생님이 나를 약간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부정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정도면 정상 범주 내에 들어가요."

아 그렇구나, 저 표정은 "이 쇼키 뭐 이런걸로 이까지 왔어" 였구나.


선생님이 나를 빠르게 내보내려고 하는게 느껴져서, 

빠르게 랩 하듯이 내가 여기에 왜 초음파를 찍으러 오게 된 것인지 소상히 얘기했다.

쓰러짐1 -> 쓰러짐2 -> 심전도 측정 -> 심장 초음파


그랬더니 선생님이 미주신경성실신 같다며, 기립경검사 를 해보자고 했다.


그게 무었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하자니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마카롱 가게에 가서 이번에는 10개만 사 먹었다. 와구와구와구와구




대학 병원 3

기립경 검사(Head up tilt test) 를 하는 날이 왔다.

주의 사항으로는, 아침을 굶고 오라는 게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이후로는 아침을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별 무리 되지 않는 요구 였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에 좀 걸리는 일이 있는데...


검사 하는 장소에 가니까 심장에 뭘 붙여야 하니까,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고는 사람들이 나갔다.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탈의실이 없길래 

걍 거기서 갈아입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커텐이 있었다 ㅜㅜㅜㅜㅜㅜㅜㅜㅜ

간호사가 나중에 와서는 깜짝 놀라서, "여기 CCTV랑 카메라 많은데" 라고 하길래 기분이 더 심란 해졌다.

누군지는 몰라도 제 가슴 잘 보셨기를.. 기왕이면 담당자 혼자서만요 ㅠㅠ


기립경 검사는, 실신할 때의 장면을 재현해서 어떤지를 보는 것 이였다.


[출처] http://www.samsunghospital.com/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실신할 때를 대비해서 판 에다가 묶는 것이고

이렇게 조금 기울인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실신이 재현될 거라고 했다.

중요한건 "아침을 굶고, 움직이지 않는 것" 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육성으로 빵! 터졌다.


그리고는 그럼 계속 실신을 안하고 있으면 하루종일 이렇게 서있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45분간 기절하지 않으면, 약물을 조금씩 투입해서 실신되는 상황으로 만들 것이라고 하면서, 어지럽기 시작하면 얘기해 달라고 했다.


검사 시작하고 나서 계속 말걸면서 움직여서, 선생님이 더 이상은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다.


그래서 속으로.... "아침은 항상 굶었었고, 호호 할머니도 아닌데, 45분간 못 서 있는 사람이 어디있어" 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때문인지 자꾸 비웃음이 입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19분 만에 기절했다.


완전히 페이드아웃 될 때 까지 테스트 하는줄 알았는데 

"어지러워요" 라고 말하면서 고개가 거꾸러지자 바로 판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깜짝 놀라서, 마카롱도 안 사 먹고 택시타고 집에 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때의 충격이란..




대학 병원 4

기립경 검사 결과에 대해서 들으러 또 갔다.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미주신경성 실신이 맞다.

약을 먹는 방법도 있긴 한데,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면 약이 잘 안들으니까.

미주신경성실신의 가장 큰 문제는, 넘어지면서 다치는 거니까, 어지러움이 느껴지면 장소 상관없이 그냥 누워라.

병원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건 없다.

아침 잘 챙겨먹고, 물 많이 마시고, 서 있지 말고, 답답한 곳에 가지 마라.



쓰러지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찝찝하지 않은건 좋은데

그에 대한 대가 치고는 너무 많은 월차와 검사비를 써야 했었다.

결과를 다 듣고나니 허망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저 검사를 할 것 같다.


돈과 시간을 쓰는게, 불안한 것 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러고보니 그 뒤로 아침은 계속 굶고 있고, 물보다는 커피를 훨씬 많이 마시고, 락페도 계속 갔고, 버스도 잘 타고 다니는데

그 뒤로 단 한번도 안 쓰러지고 잘 살고 있다.


=> 이러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입니다. 

문득 글 추가하다가 생각난건데, 연관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때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가던 길에,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아빠가 데릴러 온 적이 있음.






+ 현재(2019년) 상황.


독일로 이민을 갔습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실신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아침은 먹지 않으며, 빈속에 커피를 마십니다 :-( 

커피는 하루에 5~6잔 정도 마시는데,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그랬듯이, 클럽도 잘 가고, 땡볕에 잘 그리고 오래 서있기도 합니다. 

주변에 이런 걸 겪었다/혹은 겪고있다 라고 얘길 하지는 않아요. 사실 주변 인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 정도로 이후에는 별 일이 없었어요 :-)


실신을 여러번 하던, 2010년이랑 비교하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아래와 같아요.

1. 더 이상 야근을 하지 않음

2.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짐

3. 안정적이면서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걱정해주는 남편이 생김.

4. 저때에 비해서 몸에(특히 허벅지에) 근육이 '비교적' 많이 생김.

5. 피곤하거나/힘들면 땅바닥이고 뭐고 신경안쓰고 걍 앉음.



의사가 아니므로 뭐라 딱 잘라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삼성에 다닐때, 

체력이 너무 없는 상태로 야근/스트레스 가 많은 상황에서 일을 오랬동안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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