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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용기. 생길 후회.

category 독일 2017. 8. 14. 05:12

로그를 남기고 싶긴 한데, 블로그에 글을 쓰기에는 너무 거창하게 뭔갈 써야할 것 같은 강박적인 생각이 들고, 페북에 남기기엔 너무 쉬이 넘겨질 것 같아서 마음이 내키지 않고, 아날로그하게 일기라도 써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게을러서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보니, 링크드인이 적절해 보여서 그곳에 글을 썻는데

망할, 글을 다 쓰고 나니까 공개범위 수정이 안된다.... 결국 글 삭제하고 여기다가 다시 씀.

아무튼, 최근의 근황에 대해서 조금 나열해 보자면 회사를 뛰쳐 나와서 어찌저찌 하다보니 몇 달을 쉬었고 쉬는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에 이력서를 넣었었다. 거창하게 해외 취업의 꿈을 이루어 보자! 이런건 아니였고, '되면 그때 고민해 보자' 정도의 마음가짐 이였다.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 부터 시작해서 생판 처음 들어보는 -독일 회사인줄 알고 서류를 넣었는데, 스카이프 면접을 보다 보니 스위스 회사인 곳도 있었다- 회사까지 이력서를 넣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원서를 뒤에 넣는 것이 좀 더 현명한 방법이였는데 그러지 못하고, 경험이 없어서 마냥 면접을 잘 볼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만 가지고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에 접근했었던 것이 좀 아쉽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연락을 주었고, 생각보다 코딩 시험은 쉬웠으며, 생각보다 영어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자기 소개에 대해서, 지금 이 시점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모국어로도 자기 소개를 제대로 준비해 본 경험이 한번밖에 없는데(삼성 인성면접), 도대체 무슨 깡이였는지.. 아마 무지에서 나온 자신감이 아니였나 싶다. 대부분 회사의 면접은 서류 -> 코딩면접 -> 스카이프(팀원들과 면접) ->스카이프(HR 면접) / 전화(HR 면접) -> CEO면접(혹은 매니저 급) 으로 이루어졌었고, 아주 가끔 랩퍼인줄 착각할 정도로 속사포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내가 외국인임을 감안하고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느껴졌었다.  결국 독일 회사 2곳과 아일랜드 회사 1곳에 합격을 했었는데, 그 중에서 독일 회사 한군데가 매우 마음에 들었었다. 마음에 든 이유는 매우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되었었는데, 마지막에 CEO랑 스카이프로 2시간동안 이야기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CEO는 내 진로나 내 관심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궁금해하고 내 답변을 들어 주었으며 그걸 바탕으로 원래 지원했던 분야 말고 다른 Position을 open해 주었다. 게다가 Vendor이 추가되어 새로 꾸려지는 팀에 들어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오퍼가 온 시점부터, 진지하게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었다. 연봉이야 뭐, 한국에서도 나이나 연차에 대비하면, 심지어 내 SS전자 입사 동기들에 비해서도 워낙 많이 받고 있었던 터라.. 그렇게까지 큰 매리트가 느껴지지 않았고 집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부동산과 해외 커뮤니티와, 각종 채팅방 등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주워듣고 인터넷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결국 머리속에 남는 건 "그래서 뭘 어쩌라는거야" 정도였던 것 같다. 프로세스야 간단히 A -> B -> C 겠지만,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 인터넷으로는 접할 수 없는, 얼마나 많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겪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이력서를 낸 것은 아니였는데 외국계 회사 ㅇㅇ 에서 연락이 왔다. 이 면접도 이야기가 긴데, 여튼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도 아주 급하게 사람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서, 바로 다음날이던가 다음다음날이던가 오퍼가 왔다. 어짜피 독일 회사에서는 오퍼레터를 줄 때 애초에 싸인할 때 까지 꽤 긴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기간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그리고 막상 이민을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당장 가서 뭘 어째야 하나 싶기도 했고, 친한 옛 동료의 조언 중 '한국에서도 면접을 붙었으면, 현지에서는 언제든 job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이민을 가고 싶고, 갈 수 있을 것 같을때 가는게 낫지 않겠냐' 라는 말이 가장 크게 다가왔던 상태였다. 그래서 일단 그 외국계 회사에 입사해서, 1~2주 정도 분위기를 파악한 이후 헬 이라는 느낌이 들면 도망가자 라고 생각을 했고, 정말 그런 어영부영한 마음으로 입사를 했다. 그냥 인생이 어떻게 구르든 간에 그냥 굴러가는대로 내버려둬 보자. 라는 마음이 아주 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자세인데, 몇 달간 일을 하지 않았던 상태 였던 지라 아주 느슨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입사 첫날만에 그 회사가 매우 좋아졌다. 원래 입사하고 며칠간은 컴퓨터 셋팅하고 뭐 하고 한다고 어영부영 흘러가기 마련인데, 내가 출근한 그 시간부터 뭘 해야할지가 딱 짜여져 있었고, 아주 세세한 것들까지 담당자가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셋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다음날부터 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점이 정말로 많은데, 다른건 다 차치하고 나는 5월 말 부터 정말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보통 늦어도 5시 30분 전에는 퇴근을 하는데.. 입사 첫주 째, 뭔가 급하게 처리해야 되는 것이 있어서 여섯시 10분가량까지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주변 사람들은 다 퇴근한 후였고, 그때 퇴근하려다가 복도에서 누군가를 마주쳤는데 그 사람이 정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왜 아직도 퇴근을 안하고 있냐 누가 그렇게 일을 많이 주냐 매니저가 누구냐" 고 물은 기억이 난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싶은게, 아니, 내 스스로가 간사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안좋고 힘든것은 익숙해지기가 정말로 어려운데.. 좋고, 편리하고, 나에게 유리한것은 금방 익숙해져버려서 언젠가부터 나도 아주 빠른 칼퇴 -그 밖에 다른 좋은 것들도 함께- 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아주 손쉽게, 이민을 가지 않고도 저녁이 있는 삶을 얻었다.  그리고는 독일 회사에 구구절절 A4 3장 가량의 오퍼 거절 메일을 써서 보냈다.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얻었고,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을 얻었다. 한동안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혼자 저녁을 먹고, 남편이 오기 전까지 책이나 영화, 혹은 미드를 3~4편 보면서 기다렸다가, 남편이 집에 오면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잠이 드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흔히 말하는 곰처럼, 아주 느린속도로, 문득, 어느 날 깨달았는데, 저녁이 있는 삶을 얻긴 얻었는데, 이건 "나 혼자" 저녁이 있는 삶이였다. 남편은 여전히 야근으로 얼룩진 삶을 살고 있었고,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흔히 얘기하는 "밤" 이 되서야 집에 왔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리도 열심히 해외에 이력서를 보내고 있었던가, 내가 새로운 회사를 구할 때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이 무엇이였던가, 그 전에 연락 왔던 여럿 한국 회사를 거절한 이유가 무었이였던가.. 갖은 생각을 하다보니 그냥 개똥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 기분을 형용할 다른 표현을 찾질 못하겠다. '32년간 넘어지지 않았던 사람'으로 세상에 이런일이 에 출연해서, 신난 표정으로 달리다가 길에 엎어져서 얼굴을 바닥에 쳐박았는데 그 곳이 개똥밭이였던 것 같은 느낌같다고나 할까.  도대체 왜 코 앞 밖에 보지 못하는건지.. 용기가 없어서, 마냥 미지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 순간적으로 눈이 가려졌던 자신의 아둔함에 너무 화가 난다.  근데 또 막상 떠나려면 못 떠나겠지. 그리고는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면, 그 때의 내가 멍청했다고, 그 때는 아직 많이 어렸었다고 본인을 탓하겠지. 젊고 찬란한 내 30대 초반에, 그런 용기 한 자락 없었던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게 될까.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이 후회를, 단어만 몇 자 더 가감된 채로 몇 년 뒤에도 똑같이 반복하게 되겠지. 근데 사실, 뭔가 실현될 가능성이 낮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현실에 좀 더 발을 붙이고 고민을 하고 열심히 사는게 옳을텐데. 사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근속년수 20년 이렇게 다니고 싶기도 하고.. 그러고 싶을 만큼 정말 좋은 회사니까. 뭐가 되었든... 선택한 것들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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